방한 후 바쁜 국내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한결같이 친근한 모습으로 최정상급 팬서비스를 보여주며 국내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브라질 대표팀이 수준 높은 경기력으로 다시 한번 세계 최정상 팀임을 입증하였다. 얼마 전 EPL 시즌이 종료되며 아시아 최초로 득점왕에 오른 손흥민과 세계 최정상급 미드필더인 네이마르의 맞대결이 성사되었다는 소식에 한국 축구팬들은 부푼 기대감으로 경기장에 들어섰다.
팬들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지난 6월 2일, 한국은 브라질과의 친선전에서 1대 5라는 다소 아쉬운 점수 차를 기록하며 패배하며 개인 기량과 조직력, 전술적인 부분에 이르기까지, 월드컵 출전에 앞서 풀어야 할 과제들을 한 번 더 짚어볼 수 있었던 경기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은 기존의 4-3-3 대형을 유지하며 지역방어에 초점을 둔 운영에 집중하였다. 공격진에는 이번 시즌 EPL 득점왕의 영예를 얻은 손흥민이 왼쪽 윙어로 출전하여 공격 기회 창출에 기여하였다. 한국 수비의 핵심이었던 김민재가 결장한 상태에서 센터백에는 권경원과 김영권이 출전하였고 좌우 풀백으로는 빠른 주력으로 오버래핑과 볼 배급이 능한 홍철과 이용이 자리하였다. 브라질의 중앙 미드필더진에 대한 견제책으로는 정우영을 필두로 맨마킹과 압박이 뛰어난 백승호, 황인범이 출전하였다. 최전방 공격수인 황의조와 우측 윙어인 황희찬이 공격의 축을 담당하였고, 손흥민은 전방 볼 배급을 담당하며 최전방 공격수들이 고립되지 않도록 계속해서 기회를 창출하였다.
경기는 전반적으로 브라질의 주도하에 있었다. 킥오프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전반 2분, 한국팀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브라질의 첫 번째 공격이 있었다. 네이마르의 크로스를 티아구 실바가 곧장 헤딩슛으로 연결하며 득점에 성공하는 듯하였으나 오프사이드 깃발이 올라가며 무효 처리되었고,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반 6분경 히샬리송이 느슨해진 수비진 사이에서 발리슛으로 선제골을 기록하였다.
하지만 한국팀의 반격도 날카로웠다. 전반 30분 황희찬의 전방 돌파 후 패스를 이어받은 황의조가 오른발 터닝슛으로 동점 골을 만들었다. 좁은 각도였음에도 불구하고 황의조의 전매특허인 역동적인 터닝슛이 파 포스트에 꽂히는 그림 같은 골이었다. 최근 대표팀 내 부진을 한 번에 털어버리는 시원한 골이었기에 더욱 의미가 깊었다.
그러나 동점 스코어는 오래가지 못하였다. 전반 39분, 오른쪽 풀백 이용의 페널티박스 안에서의 깊은 태클로 인해 PK 찬스를 허용하였고, 브라질의 세계적인 미드필더 네이마르가 다시 한번 한국의 골네트를 흔들었다. 네이마르는 잔발을 이용하여 골키퍼의 타이밍을 뺏는 센스 있는 슛으로 골을 기록하였다. 전반전이 끝나기 직전, 티에고 실바의 강력한 헤딩슛이 한국팀의 크로스바를 맞추는 행운이 따르기도 하였다.
후반전은 브라질의 일방적인 리드가 지속되었다. 후반 11분 김영권의 태클이 VAR 판독 결과, 파울로 인정되며 다시 한번 PK 찬스를 내주었다. 이번에도 네이마르의 여유 있는 슛이 한국팀의 골네트를 흔들었다. 후반 24분, 한국의 패스 실책을 가로챈 브라질을 공격을 재개하였고 쿠티뉴의 마무리로 추가 골을 득점하였다. 이후 브라질은 지속적인 전방 압박으로 꾸준히 기회를 만들어냈고 후반 45분 제수스의 개인 돌파를 허용하며 다섯 번째 골을 허용하였다. 1-5 완패였다.
한국팀의 고질적인 문제점이 다시 한번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된 경기였다. 세계 최고의 팀을 상대하면서 수비진 사이의 균열이 생겼고 크고 작은 실수들이 연속적으로 나타나며 브라질에게 득점 기회를 제공하였다. 수비진 사이에서의 반복적인 패스 미스는 전방 압박에 능한 브라질 공격진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줬다. 맨마킹에 있어서도 필요 이상의 반칙을 범하며 연속해서 PK를 허용한 것이 주된 패배의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이후 반격 기회를 얻기도 하였으나 최전방 공격수였던 황의조와 황희찬이 다소 고립된 양상으로 진행되어 찬스는 오래가지 않았다.
볼을 잡을 때마다 브라질 선수 2~3명을 달고 뛴 손흥민은 경기 후 방송사 인터뷰에서 “많은 팬이 실망하셨을 텐데, 세계적 강팀과 경기에서 얻은 것도 많았다. 작은 실수와 틈이라도 용납이 되지 않는 팀과 경기를 했다. 배울 점이 많았다. 적지만 득점 기회도 있었다. 오늘의 실망이 웃음꽃으로 이어지도록 노력하겠다”며 한국 대표팀의 캡틴다운 모습을 보였다. 손흥민과 30세 동갑내기인 브라질 미드필더 네이마르는 전날 훈련 중 경미한 부상으로 인해 출전이 불투명했으나 ‘노쇼’ 논란을 일으킨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달리 선발 출장하며 페널티킥 2골을 넣어 비록 상대 팀이지만 한국 팬들의 아낌없는 박수를 받았다.
세계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꼽히는 브라질 선수들은 매 순간 경기에 집중하며 공격 시 볼을 빼앗겼을 때 순식간에 3명이 1명을 둘러싸는 적극적인 전방 압박으로 상대 공격을 차단하고 당황하는 상대 선수들로부터 오히려 다시 볼을 빼앗아 공격에 나서는 모습을 보였다. 공격권이 넘어가면 모두 물러서는 선수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세계 축구의 흐름을 브라질전 완패로 뼈아프게 배운 셈이다.
실력 차이가 심하게 났던 경기였다. 선수의 기본 실력부터 전술까지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 매우 두드러졌는데, 특히 벤투 감독의 빌드업 축구는 세계 최강 브라질 앞에서는 속수무책일 정도로 많은 허점을 보였다. 브라질의 강한 전방 압박과 조직력에 의해 한국팀의 후방 빌드업이 완전히 무너졌고 이는 씁쓸한 패배로 이어졌다.
벤투 감독의 빌드업은 골키퍼 김승규부터 시작된다.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브라질은 히샬리송-네이마르의 강한 압박으로 한국 팀의 후방을 흔들었다. 한국 수비진들은 당황하였고 연속적인 패스 실수가 나왔다. 여기에 중원 싸움에서도 크게 밀렸다. 정우영이나 백승호, 황인범, 한국팀의 미드필더는 공만 잡으면 브라질 선수들에게 둘러싸여서 제대로 된 플레이를 하지 못했다. 또한, 공격진에서의 기회 창출 능력에 대해서도 많은 허점이 노출되었다.
한국 축구의 강점은 세계 축구계의 ‘월드 클래스’로 통하는 EPL 득점왕 손흥민이란 날카로운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 물론 손흥민에게 브라질 수비가 집중되는 바람에 황의조, 황희찬, 황인범 등에게 슈팅 찬스가 주어졌으나 이는 부가적 효과일 뿐, 정작 세계적인 스트라이커로 손꼽히는 손흥민의 골 기회를 살리지 못한 점은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로 지적되고 있다.
대부분의 실점은 브라질의 강한 전방 압박과 이로 인해 파생되는 크고 작은 실수들에서 시작됐다. 반면 우리는 브라질 상대로 제대로 압박을 하지 못하며 일방적인 공세가 이어진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벤투 감독의 빌드업 축구가 강팀을 상대로는 자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문제는 월드컵에 출전하게 될 거의 대부분의 팀이 한국의 입장에서는 강팀이라는 것이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 한국과 같은 조에 포함된 팀들은 포르투갈, 우루과이, 가나이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속한 포르투갈과 남미 강호인 우루과이 모두 말할 것도 없고, 가나 역시 많은 선수의 귀화로 인해서 수준급 스쿼드를 완성했다.
벤투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이번 경기 많은 것을 보완해야 한다. 실수가 나왔기 때문에 1-5라는 스코어가 나온 것 같다. 많은 실수가 있었고 실책도 있었다. 강팀 브라질을 상대로 정당한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이번 경기 분석을 통해 다음 경기 준비에 나설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빌드업 축구에 대해서 벤투 감독은 “수비 실책에서 비롯된 실점이 있었다. 하지만 플레이 스타일을 바꾸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빌드업 과정에서 이전과는 다른 것을 시도해볼 예정이다. 많은 시간 빌드업을 시도하고 훈련하며 리스크를 가졌다. 이런 스타일은 리스크가 따를 수밖에 없다”라고 입장을 내비쳤다. 그리고는 “공격과 수비 모두에서 실수가 있었다. 이번 경기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빌드업 플레이를 수정할 시간 자체가 별로 없기 때문에 다른 스타일로 변화를 꾀하기보다는 현재의 빌드업을 유지하되,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사실 2022 카타르 월드컵까지 불과 6개월 여가 남은 시점에서 벤투 감독이 그간 준비해온 빌드업 축구를 포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 결국 벤투 감독이 말 하대로 강팀 상대로 빌드업 축구의 실수를 줄이는 방법만 남았다. 과연 벤투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이 브라질전이 준 쓰디쓴 교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