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이하 동아시안컵) 4연패를 노렸던 한국 남자 축구대표팀이 3차전에서 일본에 0대3으로 완패하며 무너졌다. 27일 오후 7시 20분 일본 아이치현 도요타시 도요타 스타디움에서 열린 동아시안컵 3차전은 무승부만 해도 4연패 확정인 경기였으나 한국은 90분 내내 우왕좌왕하며 유효슈팅 1개에 그치는 등 쓴맛만 남기는 경기를 보여주었다. 특히나 가장 최근의 한일전이었던 2021년 3월 요코하마 친선전에서도 0-3으로 참패를 당한 바가 있기에 다시금 이어진 무득점 패배라는 결과는 팬들에게 크나큰 실망감을 안겼다.
벤투 감독은 이번 81번째 한일전에 조규성(김천)을 최전방에 내세우고, 양옆에는 나상호(서울)와 엄원상(울산)을 공격수로 구성했다. 미드필더 황인범(서울)이 그리스 올림피아 코스로 이적 추진을 위해 대표팀에서 중도 하차하여 중원은 권창훈(김천)과 김진규(전북)이 맡았다. 현재 대표팀에 전문적인 수비형 미드필더 부재로 그 자리에 수비수인 권경원(감바 오사카)을 깜짝 배치하고 수비진은 주장 김진수와 김문환(이상 전북), 조유민(대전), 박지수(김천)로 구성했다. 홍콩전과 중국전에서는 벤치를 지켰던 조현우(울산)는 마지막 대회에서 처음으로 수문장으로 나섰다.
일본은 홍콩전(6-0 승)에서 두 골씩 득점한 소마 유키, 마치노 슈토에, 니시무라 다쿠마 등을 선발 선수로 구성했다.
전반 시작 직후 마치노가 페널티 지역에서 기습적인 중거리 슛을 시도했으나 조현우가 쳐내며 골문을 지켰다. 그 후 한국은 일본의 강한 압박으로 전반 내내 고전하며 공격을 원활하게 전개하지 못했다. 전반 19분 소마의 왼발슛이 오른쪽 골대를 맞고 나왔으며, 전반 34분에는 소마의 코너킥을 조현우가 가까스로 쳐내는 등 실점 위기를 힘겹게 막아내며 양 팀 득점 없이 전반전을 마쳤다.
경기 후반전에만 소마 유키, 사사키 쇼, 마치노 슈토에 연속 골을 허용하며 일본에 3점이나 내줬다. 후반전 시작 3분 만에 소마 유키가 선제골을 넣자 벤투 감독은 후반 11분 엄원상을 빼고 송민규(전북)를 투입해 공격에 변화를 주고자 하였지만, 후반 18분에 수비수인 사사키 쇼가 골문 정면에서 헤딩으로 밀어 넣어 또다시 득점에 성공했다. 후반 23분, 한국은 이영재(김천)와 조영욱(서울)을 투입하며 실마리를 풀고자 하였으나 이어서 후반 27분 마치노 슈토에게 세 번째 골을 내주고 아쉬움 속에 경기를 마쳤다.
한국 대표팀은 경기 내내 좀처럼 공격 기회를 잡지 못하고 후반 32분에서야 경기 첫 번째 유효 슈팅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송민규가 측면에서 올라온 크로스를 슈팅으로 연결했으나 상대 골키퍼에 걸려 무득점을 기록했다. 0대3으로 대패했던 지난 한일전 경기를 설욕하고 4년 연속 우승 트로피까지 들어 올리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의지는 강했지만, 경기 내내 일본의 공격에 고전하며 제대로 리드 한 번 해보지 못한 채 유효 슈팅 1개라는 실망스러운 성적을 기록했다.
이로써 한국 대표팀은 2승 1패, 승점 6점으로 2022 동아시안컵 대회를 마치며 2승 1무, 승점 7점을 얻은 일본에 뒤를 이어 2위에 머물렀다. 일본은 2013년 이후 9년 만이자 통산 두 번째 동아시안컵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앞서 홍콩과 중국을 상대로 각기 3-0으로 꺾고 2연승을 달리며 분위기를 올리던 한국 대표팀은 마지막 경기에서 무승부만 해도 대회 4연패가 확정이었기에 기세를 몰아 승리를 안겨줄 것을 기대하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한국 대표팀은 ‘요코하마 참사’라고 불리는 2021년 한일 친선경기에서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하지 못했다.
이번 한일전에 앞서 이미 해외의 베팅 사이트에서는 일본의 승리 가능성을 더 높게 보았다. 일본이 승리하는 경우 배당률이 2.08이지만 한국이 승리할 경우애는 3.10, 무승부에는 3.0이 걸려 일본이 우세할 것으로 보기도 했다. 이 대회 이전의 역대 전적 전체를 보면 한국이 42승 23무 15패로 우위였으나 2000년대 이후에는 6승 7무 5패로 양 팀의 실력이 거의 비슷했기 때문이다.
동아시안컵이 국제축구연맹(FIFA)이 정한 A매치 기간이 아니어서 주축인 해외파 선수들을 소집할 수 없어 K리그 선수들 위주로 꾸렸지만, 일본도 J리그 선수들 중심으로 팀을 구성하여 사정이 다를 바 없었다.
벤투 감독은 권경원을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 기용하는 실험을 했으나 효과를 보지 못했다. 정우영(알사드) 말고는 수비형 미드필더 카드가 부족한 현재 한국 대표팀에 맞는 해답을 여전히 찾지 못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비기기만 해도 우승컵을 들 수 있었던 상황이었음에도 일본의 맹공에 기를 펴지 못하고 위기를 타개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힘없이 참패했다.
경기를 마치고 벤투 감독은 “일본은 90분 내내 한국보다 잘 뛰었고, 이길만한 경기를 펼쳤다. 우리는 최선을 다했지만 실수가 많았다. 남은 시간 잘 보완하겠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제 2022 카타르 월드컵까지는 4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한국은 포르투갈, 우루과이 등 한국보다 강팀으로 여겨지는 팀들과 함께 H조에 편성되어 있다. 많은 전문가 및 해외 베팅 업체들은 한국의 16강 가능성이 작다고 예견하고 있다. 월드컵 전까지 치를 수 있는 평가전은 앞으로 두 세경기뿐이다. 하지만 아직 포기하기에는 이르다. 비록 아시안컵 마지막 경기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이번 대회에서 분명 소기의 성과는 있었다. 손흥민 같은 핵심 선수 없이 동아시안컵 대회를 이끌어야 했던 벤투 감독은 이번 기회를 삼아 순수 국내파들로만 대표팀을 꾸려 점검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은 엔트리 선수가 기존 23명에서 3명 더 추가해 26명으로 늘어났기 때문에 월드컵에서 뛸 가능성이 있는 선수 중에서도 전력에 보탬이 될만한 선수들을 최대한 발굴하는 게 중요했다. 홍콩과의 2차전을 3-0 승리로 이끄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대표팀 막내 강성진은 A매치 데뷔였음에도 한 경기에서 2골을 넣는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중국과의 1차전에서 선발 출전하여 A매치 데뷔전을 치른 김동준이 대회 최우수 골키퍼로 선정되었다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벤투 감독이 이들 선수를 월드컵에 데려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벤투호는 골키퍼부터 시작하는 ‘빌드업 축구’를 추구한다. 건드릴 수 없는 핵심 선수들에게 생길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백업할 수 있는 확실한 카드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번 대회에서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었던 선수들을 어떻게 전술에 활용할지 짧지만 남은 기간 파울루 벤투 감독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